충청남도의회 의원 방한일
최근 한국과 미국 간 통상교섭이 본격화되면서, 또다시 우리의 농업과 축산업이 협상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측에서 한국의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그리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 농민들에게 분노와 좌절을 안기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 농업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수십 년간 혹독한 시련을 겪어 왔다. 쌀을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관세 인하 또는 무관세로 수입되고 있으며, 특히 소고기·밀·옥수수·과일류 등 주요 품목은 미국, 호주, 칠레 등 수입산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 와중에 또다시 농산물 시장을 열라는 압박은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니라, 우리 농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지금의 협상을 단순히 수출 확대나 산업 균형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농업은 단지 산업이 아니라 식량주권의 기둥이자, 지역경제의 뿌리이며,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국민의 식탁을 외국의 가격과 정책에 맡기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직무유기이며, 외환 위기보다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산 소고기의 추가 수입은 이미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축산 농가에게 결정타가 될 것이다. 2008년 광우병 논란 이후, 소비자들의 불안과 농가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대규모 촛불 집회와 국민적 저항은 지금도 국민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런 역사의 교훈을 외면한 채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번 한미 통상교섭에서 농업 분야를 방어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한 품목이나 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소멸, 청년 농업인의 붕괴, 고령 농가의 생계 파탄, 그리고 대한민국 식량자립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202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2.4%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이 70%를 넘는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2030년대에는 30% 수준까지 떨어질 위기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외교부, 산업부, 농림축산식품부는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미국 측의 일방적인 요구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농업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익이며, 한미동맹의 건강한 지속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미국이 한국에 반도체나 전기차에 대한 전략적 협력을 요구하듯, 우리 또한 농업 보호를 국가 전략 산업의 하나로 당당히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부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첫째, 농업은 반드시 지켜야 할 국가의 핵심 산업이므로 이번 협상에서 농업 부문을 완전히 제외해야 한다. 이는 국민 먹거리와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사회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둘째, 미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국민 안전과 직결된 사안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안전성 검사, 국제 기준을 준수한 검역절차를 반드시 준수하여 소비자 안전 규제를 철저히 강화해야 한다.
셋째, 협상 전부터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농업계와 충분히 소통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한 투명한 협상 과정 공개 원칙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농업이 외교의 협상 카드로 이용되는 현실을 용납할 수 없다. 농민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생태계의 수호자이며, 농촌은 국가의 근간이다. 단기적인 수출 실적을 위해 농업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자살 행위에 다름 아니다. 한미 통상교섭은 ‘공정한 상호주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일방적인 양보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우리 농업과 국민의 식탁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실천이다. 외교의 최전선에서 농업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격이고 자존심이며, 위기 시대를 이겨내는 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