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순간 이빨 뽑던 순간을 떠 올려보길”

평생을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며 살아온 강병철 시인은 후배 작가들에게 이왕 문단에 입문했으면 이 세상 모든 사물 현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날마다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로 치열하게 글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평생을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며 살아온 강병철 시인은 후배 작가들에게 이왕 문단에 입문했으면 이 세상 모든 사물 현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날마다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로 치열하게 글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글을 쓴다는 건 매우 고단한 일이다. 그래서 세상은 그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는 글쟁이들을 대단하게 여긴다.

강병철 시인은 사연 있는 글쟁이 중 하나다. 지난 1983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유년일기 ▲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 ▲꽃이 눈물이다 ▲호모중딩사피엔스 ▲사랑해요 바보 몽땅 등의 시집을 발간하며 시인으로 살아왔다. 여기에 ▲비늘눈 ▲엄마의 장롱 ▲초뻬이는 죽었다 ▲나팔꽃 ▲닭니 ▲꽃 피는 부지깽이 ▲토메이토와 포테이토 등의 소설도 썼다.

그러나 글쟁이 이전에 그는 선생님이었다. 군사독재정권(5공화국)이 그에게 ‘해직교사’란 별칭을 만들어 줬지만 그것은 오히려 글을 쓰게 일에 청춘을 바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1985년 무크지 ‘민중교육’에 소설을 발표했다가 3년 8개월 정도 해직을 당했습니다. 5공화국 정권의 필화사건 희생자 중 한사람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었던 시련이 제 글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왜 글을 써야하는지가 확실했던 강 시인은 장르를 넘어 6권의 산문집도 썼고, 청소년 잡지 ‘미루’의 발행인을 10여 년 역임하는 등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강병철 시인은 ‘이빨 뽑기’란 작품을 애송시로 선택했다. 남다른 아픔을 겪었던 탓에 뭔가 묵직한 작품을 내좋지 않을까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내공이 겹겹이 쌓인 글쟁이의 대답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그 옛날 이빨 뽑기는 두려움을 이기고 참을성을 키우는 시험장 같았습니다. 이걸 견딘다는 건 소년기를 벗어나는 통과의례였다고 할까요.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몇 차례의 이빨 뽑기를 경험하지 않을까 싶네요. 힘든 순간이 찾아 왔을 때 이빨 뽑던 순간을 떠 올리며 웃어보세요”         

 

이빨 뽑기

이리 와라, 문고리 노끈이 팽팽해지면서
물상들이 일제히 숨을 멈췄다
아비가 조선낫 들며, 썩은 놈을 도려내야 
나머지가 안 상한다, 시퍼런 노끈 슥슥 문지르자 
단풍나무 붉은 색깔 소스라쳐 빠져나가고 
아이 혼자 바들바들 떨고 있다
저녁노을 백화산 너머로 그늘 덮는데 
입을 벌려라, 태아처럼 웅크렸지만 
어미도 차갑게 등을 미는 바람에
혼자서 아, 이 풍진 세상 감당해야 했다
잠깐이면 된다, 부엉이 소리
후엉후엉, 문고리 젖혀진다
초승달 한 조각 개구리처럼 폴짝 뛰는데
살려주세요, 그 말 튀어나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금파리 조각만 툭 튕겼을 뿐이다
이상하다 시누대 바람 받으며 갸우뚱한다
아프지는 않았어 증말이야
그런데 눈물이 쏟아졌다 하염없이 
감나무 그늘 시커멓게 내려앉던 늦가을
아랫도리 틈실한 사내의 길 품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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