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점과 닮은 우리의 일생이 재생할 수 있기를”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지난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주택 시인은 이후 ▲꿈의 이동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시간의 동공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자신이 시를 쓰는 사림임을 세상에 깊이 각인했다. 

17일 박 시인은 “(시인은)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작품에 고스란히 녹여내야만 비로소 불멸의 힘을 가진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시에는 이런 고집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 주변의 흔한 일상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휩싸인 삶의 진실이 된다.  

등단한 지 35년, 긴 세월을 거쳐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중견이 된 박 시인은 많은 자신의 작품 중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린 ‘폐점’을 애송시로 선택했다. 

“폐점은 공간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문이 열린 개점의 활기와 극명하게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 박 시인은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 이 시가 자주 떠오르는 것은 폐점이 우리들의 일생과 닮아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살아 있는 생명력을 지닌 공간이 다른 공간으로 환생하는 것처럼 폐점 역시 윤회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삶도 함께 값져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녹아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폐점도 다시 재생하기를 기원하고 있는 박 시인은 현재 모교인 경희대학교에서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코로나19란 거대한 고난을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인생의 고샅길을 걷고 있는 요즘이지만 박주택 시인의 바람처럼 희망만은 폐점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폐점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 본다
자정 지나 인적 뜸할 때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형
한때는 옷을 걸치고 있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불현듯 귀기(鬼氣)가 서려오고
등에 서늘함이 밀려오는 순간

이곳을 처음 열 때의 여자를 기억한다
창을 닦고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옷을 걸개에 거느라 허리춤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도 있었고 커피 잔도 있었다

작은 이면 도로 작은 생의 고샅길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며 
배기가스를 뿜어대는 유리문 밖

어느 먼 기억들이 사는 집이 그럴 것이다
어느 일생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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