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로 고향의 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고 싶어”

김가연 시인은 세상의 사물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시적인 삶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가연 시인은 세상의 사물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시적인 삶인 것 같다고 말했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지난 5일 시집 한권을 들고 나타난 김가연 시인의 첫인상은 소녀 같았다. 시를 쓰는 행위가 방부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한 모습이었다.

2009년 계간 ‘열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간의 배후 ▲푸른 별에서의 하루 ▲디카시집 해미읍성, 600년 역사를 걸어나오다 ▲육백 년의 약속 등 여러 시집에서 작품을 선보인 김 시인은 의외로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신작인 ‘즙’이란 작품을 애송시로 꼽았다.

“제목이 ‘즙’이라고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즙을 꼭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시를 쓸 때마다 세상에 없던 내 자신만의 세계를 담고자 노력한 만큼 독자들도 나름대로 의미를 파악해 감상했으면 좋겠네요”

김 시인은 ‘나의 언어를 삭제하고, 말의 찌꺼기도 버린다’고 했다. 좋은 시에 대한 열망으로 수많은 나날을 보낸 끝에 얻은 교훈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열망도 있다. 고향인 서산의 가치를 시를 통해 문학적으로 조명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간의 수고로움을 담은 결과물도 선보였다.

해미읍성을 소재로 한 2권의 시집에 실린 350여 편의 시는 수백 년 세월을 살아온 민초들의 삶부터 성벽을 이룬 작은 돌덩이 하나, 그리고 그 돌에 낀 이끼까지 수많은 사연을 담아냈다.  

창작욕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큰 작업인 탓에 김 시인은 군지와 면지 등의 온갖 자료를 찾아 헤맸고, 지금도 좋은 시를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중이다.

“해미읍성에서 큰 영감을 받았고, 이제 이 영감을 밑거름 삼아 서산에 대한 시를 계속 쓰려고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좋아하는 시도 쓰고, 사랑하는 고향의 가치도 높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닐까 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당신은 나의 첫 문장이며 마지막 문장입니다
또한 탄생 이전의 말이며 세상 이후의 말입니다

당신은 속살의 음률이며 초록을 깨우는 바람이어서
나는 당신의 소리로 듣고 당신의 빛깔로 봅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당신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당신의 말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거대한 협곡을 떠도는 파장이고
나는 그 너머를 유영하는 떨림입니다

올림과 쉼표로 남은 소리의 질료들이 
당신의 계절로 와서 꽃이 됩니다

이제 
나의 언어를 삭제합니다

말의 찌꺼기를 버리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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