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심(추수)을 했다. 농부들이 죽 늘어서 낫으로 벼를 베던 가물가물한 기억의 쪼가리를 떠올려보려 했지만 논바닥을 휩쓸고 다니는 콤바인의 어수선함 덕에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불과 수십여 년 만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모를 심는 것부터 추수하는 것까지, 그리고 시기마다 농부의 손을 필요로 했던 많은 작업들이 이제는 거의 기계의 몫이 됐다.
획기적인 노동력 절감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산량 등 쌀농사와 관련한 대부분의 여건은 좋아졌지만 정작 주인공인 쌀의 위상은 몰골이 말이 아니다.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이 땅의 모든 가치를 결정하던 위치에 있던 쌀이 지금은 정부가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라고 읍소할 만큼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벼를 심어야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한 농부가 필자의 눈길을 끈다.
‘쌀이 남아도는데 대체작물을 심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농부는 뜬금없이 국수 이야기를 한다.
쉽게 말해 한국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국수를 비롯한 수많은 밀가루 제품을 쌀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국내산 쌀이 남아도는 상황임에도 외국산 쌀까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하고, 그것도 모자라 쌀국수까지 수입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농부가 짜낸 아이디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먹는 어마어마한 면제품 대부분은 외국산 밀가루로 만든 것이다.
그동안 쌀을 이용한 가공 식품인 떡, 막걸리, 즉석 밥, 한과, 식혜 등에 많은 정성을 쏟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나마 수입 밀가루의 위해성이 알려지고, 글루텐프리 운동이 일어나면서 밀가루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이 희망이다.
우리 식생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밀가루의 위용은 여전히 대단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다. 어마어마한 밀가루 면 시장을 쌀가루로 대체할 수 있다면 쌀과 관련한 문제 중 상당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쌀국수 제조에 적합한 아밀로스 함량이 30%대인 품종을 발굴해 재배해야하고, 오랜 세월 밀가루에 세뇌당한 입맛을 되돌리는 일도 시급하다.
하지만 한우, 한돈처럼 우리 쌀로 만든 한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렇게 잘 익은 낟알들을 보면서 이번에 추수한 쌀로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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