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춘포에 반한 이석희·김희순 부부

▲ 춘포짜기의 전통을 잇기 위해 의기투합한 이석희·김희순 부부. 이들은 서로가 있었기에 힘든 길을 선택했고, 지금도 묵묵히 가고 있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농사를 짓고, 직물은 짜는 기술은 아주 오랫동안 문명의 선진성을 가름하는 척도로 활용됐다. 그러나 불과 100년 남짓한 시간에 산업화란 거대 물결에 밀려 인간의 수고로움은 비효율적인 구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옛것을 고집하는 한 부부가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청양군 운곡면 후덕리의 산자락 중턱에서 춘포를 옛 방식대로 짜 보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이석희·김희순 씨.

지난 5일 만난 이 부부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남편 이석희 씨의 할머니와 어머니인 양이석, 백순기 여사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차례로 선정되며 춘포짜기의 마지막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집안이 된 것이다. 지난 1984년 시집 온 부인 김희순씨도 집안 내력에 자연스럽게 동화돼 20여 년 전부터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 새롭게 단장을 마치고, 옷감 짜기 체험장이라는 간판도 마련한 이석희·김희순 부부의 집. 4년에 걸쳐 손수 하나씩 고쳐가며 만들고 있다.
▲ 이석희·김희순 부부는 전통을 이어 나가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잊혀 가는 옛 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은 전시공간도 같은 맥락에서 준비했다.

옛것이라 칭해지는 대부분이 그렇듯 현재 춘포짜기의 처지는 바람 앞의 촛불과 같다. 획기적인 인공섬유의 편리함에 밀려 관심 밖이 된지 오래고, 희미하게나마 기술을 기억하고 있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살이에 분주했던 이석희·김희순 부부에게도 한동안 춘포는 집안의 전통일 뿐 그다지 심각한 존재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어머니 백순기 여사가 작고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숨만 붙어있는 처지가 된 춘포짜기의 명맥을 지켜야 한다는 과제가 이 부부의 발등에 떨어진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때와는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진 세상과 ‘그런 게 있어!’하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이 부부는 긴 시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가 춘포 짜는 것을 보면서 자란 탓에 마음속으로는 늘 관심이 있었지만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라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니 우리 부부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막막했습니다”(이석희)

현실적인 문제만을 생각하면 여기서 포기하는 것이 백번 약은 선택이었지만 이들 부부는 결국 힘든 길을 가기로 했다. 삼포를 짜던 어른들의 모습이 어른거렸고, 먼 훗날 저승에서 만나면 얼굴을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란다.

어렵게 결심이 서자 부부는 4대째 살아온 낡은 시골집을 자신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고치기 시작했다. 이왕 시작한 거 춘포짜기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온 가족이 체험도 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까지 생겼다.

내년까지는 계획했던 그림의 90%까지는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들은 여전히 쉬운 길 대신 어려운 길을 고집하고 있다. 뽕나무와 모시도 심고, 허가를 받아 삼도 키워 볼 심산이다.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보겠다는 것이다. 남편이 욕심이 많다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부인 김순희씨도 사실은 한통속이다.

▲ 춘포짜기 전수조교인 김희순씨는 명주를 날실, 모시를 씨실로 하는 춘포는 삼베, 모시, 명주와는 다른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명색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 춘포짜기의 전수조교 신분이고, 조만간 문화재 보유자에 도전해야 할 자신이 남편에게 뒤쳐질 수는 없는 탓이다.

“조만간 문화재 보유자에 도전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크네요.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제게 춘포를 가르쳐 주신 시할머니, 시어머니의 솜씨를 따라가다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하늘나라에서 두 분이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김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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