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청양 둔송 구기주 임영순 보유자·최정아 전수조교  

▲ 하동정씨 가문 10대와 11대 며느리로 살아온 청양 둔송 구기주 임영순 보유자와 최정아 전수조교는 술에 있어서는 40년 지기 동료이자 친구다. 최고의 술을 만들겠다는 공통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술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다. 그런 탓에 지구상에는 각양각색의 술이 존재한다. 

산 좋고 물 좋은 청양에서는 구기자주가 오랜 세월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다. 지난 2000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걸 보면 지역에서의 존재감을 알만하다.

구기자주가 명주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는 두 아낙의 숨은 노고가 있었다. 지난 5일 만난 임영순 보유자와 최정아 전수조교가 그 주인공이다.

이 둘은 고부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로서의 속사정은 알 수가 없지만 술에 관한한 세상 둘도 없는 동료이자 동업자며 친구다.

“술 좋아하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난 덕에 시집 오자마자부터 구기자술을 담기 시작한 것이 평생의 수고가 됐습니다. 시어머니한테 호되게 혼나 가면서 배운 탓에 제대로 하는 것이 몸에 배었죠”(임영순)

▲ 청양 둔송 구기주가 다른 구기자주와 비교를 불허하는 것은 구기자와 뿌리를 비롯해 약초, 들국화 등 직접 농사 지은 귀한 재료가 듬뿍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이들의 손을 거친 구기주는 즐겨 마셔도 술병이 나지 않고, 숙취가 없는 것이 장점이다.

임 보유자가 이렇게 가족을 위해 정성껏 만든 술은 금세 입소문을 탔다. 손님이 와도 제대로 대접할 것이 없던 시절, 광암리 하동정씨 종갓집에 가면 꽤 그럴싸한 술을 맛볼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자신이 만든 술을 그렇게 좋아했던 시어머니와 남편을 차례로 떠나보내고 한 때는 모든 것이 시들해지기도 했지만 한번 맺은 인연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상품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잘 팔리겠다”는 술꾼들의 호평도 그렇고, 구기자주의 값어치를 알아본 사람들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도전은 식품명인, 20년 이상의 경력과 다양한 자격요건을 충족해야만 하는 어려운 관문이었지만 호랑이 시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아닌 것은 배운 적이 없던 터라 임 보유자는 1994년 명인이란 호칭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정씨 가문의 비법이 고스란히 담긴 ‘청양 둔송 구기주’란 명주를 탄생시켰지만 현실의 벽이 예상외로 높았던 것이다.

초창기 3년 동안은 정들었던 논을 팔아서 술을 만들어야할 만큼 힘들었다. ‘평생 농사나 짓던 인물이 무슨 술장사냐?’며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힘이 되어준 며느리가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의기투합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힘든 고비 속에서도 더 높은 곳을 향했다.  청양 둔송 구기주를 충남도무형문화재로 만들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전국적인 명주로 만들어 보자는 꿈이 생긴 것이다. 

▲ 임영순 보유자와 최정아 전수조교의 고집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청양 둔송 구기주.

술을 싸들고 농림부를 수차례나 방문하면서 얻은 명인 자격보다 더 힘든 과정이었지만 이 둘은 결국 해냈다. 서로의 마음이 안 맞아 위태위태할 때도 있었지만 두 사람에겐 구기주란 공통분모가 있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임영순 보유자는 “이 힘든 술 빚는 일을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명맥은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슬쩍 며느리 최정아씨에게 눈길을 준다.

최 전수조교의 대답도 걸작이다. “술 하는 집인 줄 알았으면 시집 안 왔을 것이다”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이내 마음속에 그려둔 큰 그림을 털어 놓는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아들과 딸 중 한사람은 구기주를 이어가야지 않을까 합니다. 조건도 걸었어요. 엄마에게 잘 하는 사람(구기주의 전통을 잇는 사람)에게 상(?)도 준다고, 150년 전통 꼭 이어갈 겁니다”

다른 때 같으면 1년 중 가장 바쁠 시기지만 코로나19로 너무 한가해 몸이 쑤신다는 임영순 보유자와 최정아 전수조교. 그래도 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구기주 한잔이면 세상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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