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이얀 고깔 쓰고 나비가 된 심화영승무보존회원들

▲ 지난달 17일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만난 심화영승무보존회원들. 20년 전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이제 30~40대가 됐지만 여전히 자랑스럽게 승무를 춘다.(사진 왼쪽부터 최승원, 하세영, 김주현, 문정신, 이애리, 신나연, 서은희씨)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20년 전 걸그룹 못지않게 아름다웠던 20대의 처자들이 그들과는 전혀 다른 춤을 추기 위해 모였다. 당시 환호를 한 몸에 받던 걸그룹은 모두 다른 얼굴로 바뀌었지만 불혹이 넘은 이들은 아직도 꿋꿋하게 같은 춤을 춘다.

심화영승무보존회, 사람들이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관심은 미지근하다. 하지만 이애리 회장을 비롯한 12명의 회원은 별반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온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값어치를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지난 2000년 심화영 선생이 88세란 늦은 나이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면서 이들은 의기투합했다. 그리곤 한눈팔지 않고 심화영류 승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심화영 선생의 생전 모습. 심 선생은 자신의 춤을 이어가기 위해 모인 젊은 예술인들에게 하나라도 더 전해주기 위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열정을 내려놓지 않았다.

심화영 선생은 손녀딸 같은 어린 친구들이 자신의 춤을 계승하기위해 나서준 것에 대해 무척이나 고마워했다고 한다.(이애리 회장은 심화영 선생의 외손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인 승무조차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름도 없이 간신히 명맥만 이어온 심화영류 승무에 젊음과 재능을 투자해 준 것이 기특하고, 미안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심화영 선생은 90을 목전에 둔 고단한 육신을 이끌고도 무대에 기꺼이 올랐다. 지난 2009년 97세로 이 세상과의 인연을 다 할 때까지 쭈글쭈글한 손으로 허공을 가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전해주고자 했다.

충남무형문화재 선정 후 꽃을 막 피우려던 심화영류 승무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전수조교와 이수자가 되려면 예능보유자의 추천서가 있어야 하는데 2009년 이후 10년 넘게 공석인 탓이다.

▲ 이애리 회장의 공연모습. 이 회장은 3일 심화영류 승무의 고유한 전통과 매력을 계승하는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중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다.

2013년 전수조교인 이애리 회장이 할머니의 뒤를 이어 예능보유자에 도전했지만 문턱은 예상대로 높았다. 현재 전수조교와 이수자 6명, 전수자 5명 등 원년 멤버들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턱없이 모자란 인원이다.

무용의 기본기가 갖춰진 후에야 도전할 수 있는 승무의 특성상 후학을 키워낼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이 막힌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회원들은 씩씩하다. 자신들이 여기서 포기하면 심화영류 승무도 함께 끝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연습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이들은 지난달 22번째 공연을 성공리에 무대에 올렸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단 관심이 많아졌지만 앞으로도 자신들에게 쏟아질 환호는 없다는 것을 보존회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려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춤꾼이기 때문이다”   

▲ 심화영승무보존회는 현재 기로에 서있다. 2009년 이후 10년 넘게 예능보유자의 자리가 공석인 탓에 후학 양성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각종 공모 사업 등에 늘 도전하고 있다.

[심화영류 승무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다른 류의 승무와 다르게 서서 시작하며 염불장단이 6장단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빠른 동작을 절제하고 담백하며 마음의 표현이 춤에 일치하는 자연스러운 춤사위가 특징이다.

심화영의 오빠 심재덕과 성명미상의 방씨에 의해 완성되어진 아직 무대화되지 않은 1930년대 고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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