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가슴에 도장 찍힌 다섯 문장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272자 2분짜리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 마지막 내용이다. 연설이 끝나자 청중은 얼어붙은 듯했고, 관중의 반응에 완전 실패했다며, 링컨이 독백을 내뱉고 돌아설 즈음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이 기억하고 있는 연설 중의 연설이었다.
K-팝이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지만, 아직도 전파되지 않는 우리 민족 가슴에 새겨진 다섯 문장을 추려보면, 2차 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 중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역전된 대한민국 자존감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실감할 것이라 확신하며, 그 정신과 언어의 힘에 감전되면서 다섯 문장을 나열해본다.
첫 번째는 민족시인 윤동주 「서시」의 첫 문장이라 인감도장을 찍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나라를 강탈당한 통한과 슬픔을 어찌 이보다 더 스며들게 할 수 있으랴! 고결한 민족의 가슴을 기독교, 불교 등 종교가 지향하는 가치로 이보다 더 승화시킬 수 있으랴!
두 번째 문장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를 선정해본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 간신배들은 사라지지 않고 권력에 기생하고 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백의 종군하던 충무공 이순신은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사즉생(死卽生), 생즉사(生卽死)”.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살기를 먼저 하면 죽을 것”이란 표현하기 어려운 비장한 각오로 지휘할 수군이 없다면 권율을 돕도록 하라는 선조의 어명에 미천한 신(臣)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왜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 보고 하고 열두 척의 배를 이끌고 적선 333척을 격침하는 세계 해전사에 영원히 기록이 될 명량해전 대승을 거두게 된다. 왜 지금은 이런 장수가 없을까 한탄스러울 뿐이다.
세 번째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꽃 좋고 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니, 내(川)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 라 추천한다.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 이 문장의 핵심 키워드인데 각각 잡지의 제목으로도 쓰였던 깊고 정이 가는 말이다. 우리 민족이 은근과 끈기와 심지가 얼마나 올곧은지를 알 수 있는 흔들림 없는 명문장으로 가을하늘보다 높게 칭송해보고 싶다.
네 번째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의 가사를 뽑아본다.
이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가사를 작사한 분을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영국과 일본의 국가는 왕을 찬양만 했고, 미국과 프랑스의 국가는 화염이 날아가며, 피가 튀는 가사이지만, 삼천리 금수강산을 자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가사로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애국하겠다는 국민은 지구상에 어떤 국가도 없으리라 생각해본다.
다섯 번째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라는 문장을 링컨 연설문 마지막 내용과 대결시켜 본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곡이라 했다. 그러나 작사, 작곡가는 없이 설만 무성하지만 똑같은 노래인데도 템포를 빠르게 하면 신이 나는 곡이 되고 템포를 느리게 하면 슬픈 곡조로 변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끼와 혼이 그대로 녹아든 민요가 아닐까 벅찬 마음으로 표출해본다.
삶 자체가 외롭고 고행이라 했지만, 작금의 세상사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박하고 매정함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 나열된 민족 가슴에 깊고 선명하게 도장 찍힌 문장들을 고난의 삭풍이 휘몰아칠 때마다 한 번씩 꺼내어 되새김해보면 삭풍이 훈풍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지금은 사라진 화롯불 같은 정겨움을 지피기 위해 나름의 생각을 피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