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림과 함께라면 B급 인생도 즐거운 권동혁 화가

▲ 27일 작업실에서 만난 권동혁 화가. 전업화가의 길을 가기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처지지만 그의 표정은 언제나 환하다. 최근 영화를 보고 완성한 작품 ‘조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올해 마흔이 된 권동혁 씨는 10년차 전업화가다. 엄밀히 말하면 영혼은 그렇지만 몸은 공방에서 목공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반쪽짜리다. 그렇다고 풀이 죽어 신세나 한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권 화가는 팍팍한 현실조차 즐겁다. 죽도록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미술을 공부하려면 은수저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레 미술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평범한 직장인이 됐죠. 하지만 늘 무언가 허전했고, 갈증이 났습니다. 그림을 안 그리면 죽어서도 후회가 될 것 같았죠. 그래서 20대 후반 인생의 진로를 확 바꿨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잘 다니다 다 늦게 미술을 공부한다고 나선 그를 세상은 탐탁지 않게 바라봤다. 물론 부모님의 걱정도 하늘을 찌른 건 당연지사. 그래도 권 화가는 씩씩할 수 있었다. 붓을 잡고 캔버스 앞에 앉으면 누가 뭐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미술에 미쳐 있었다.

▲ 작품명 - ‘손은 눈보다 빠르다’. 권동혁 화가의 작품들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이 주를 이룬다.
▲ 작품명 - ‘인류멸망 보고서(쓰나미). 권동혁 화가는 다음 전시회 주제로 ‘인류멸망시리즈’를 계획 중이다

권 화가는 미술계에서 말하는 정통이니 주류니 하는 부류와는 거리가 멀다. 늦은 나이에 도전한 그에게 미술 선생님이 개성을 최대한 살리는 화가가 될 것을 조언한 것도 영향을 줬지만 본인 스스로도 근엄하거나 진지한 것을 영 어색해 한다.

권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B급’이라 부른다. B급 인생을 살고 있는 B급 화가가 그렸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B급 작품에서는 빛이 난다. 미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진심이 담겨있는 탓이다.

“그림의 소재는 사람들과 일상이 주를 이룹니다. 저의 경험들도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하구요.  그러다보니 모든 작품이 현실적입니다. 우리 현실이 엄밀히 말하면 A급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B급 현실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 작품명 - ‘설마 나도(고독사). 재미가 넘쳐나는 권 화가의 작품이지만 그 내면에는 우리사회에 대한 깊은 울림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들은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중국산 ▲현실남매 ▲인류멸망 보고서(쓰나미) ▲나를 고쳐주세요 ▲설마 나도 ▲조커 등 코미디 영화에 더 울리는 것들이다.

권 화가의 작품과 마주한 관객들은 즐겁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화투를 치고 있는 모습이나 로또 번호를 확인하고 있는 젊은 청년, 인사로 손가락 욕을 주고받는 오누이, 주차 문제로 양아치에게 곤욕을 당하는 알바 등 우리의 일상을 담은 그의 그림은 현실보다 재미있다.

이런 탓에 권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좋고, 작품에 대해 평가를 내릴 필요도 없다. 그냥 한번 신나게 웃는 것이면 족하다. 그러다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씁쓸함이 치밀거나 먹먹해질 때가 오면 어느덧 관객이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림은 한없이 재미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생활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 그래도 권 화가는 씩씩한 B급답게 당당히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지금까지 2점을 팔았습니다. 제 그림이 분위기 좋은 곳에 걸만한 것이 아닌 탓에 별 후회는 없습니다. 잘 팔릴만한 그림을 그릴 재주도 마음도 없고요. 하지만 앞으로 제 그림을 좋아해줄 마니아들은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그림 많이 그릴 테니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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