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산시인협회 오영미 회장

▲ 26일 만난 오영미 시인은 "창작을 통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 시를 통해 타인에게 위로를 주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시인으로 사는 가장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서산시인협회 오영미(54) 회장은 “시인은 죽으나 사나 창작에 몰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롱 속 면허증 마냥 타이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시로써 시인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창작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인이란 이름으로 살아온 지난 20여년의 세월동안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얻은 답이 ‘창작’ 이기에 괴롭든 즐겁든 항상 함께하려 노력하고 있다.

“나도 시인이란 우쭐한 마음에 등단 후 6년 만에 첫 시집을 냈지만 슬럼프에 빠져 한동안 시를 쓰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2집을 세상에 선보이는데 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을 만큼 창작의 고통이 컸죠. 하지만 그때 깨달았죠. 시인은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인이라는 것을요”

지난 2002년 등단한 오 회장은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다시 시를 공부하기 시작,  2006년 학사를 땄다. 나 잘난 맛에 썼던 시들이 성에 안찬 탓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2008년 1집 ‘서산에 해 뜨고 달뜨면’과  2012년 2집 ‘모르는 사람처럼’.

하지만 좋은 시에 대한 갈증이 여전했던 탓에 오 회장의 시 공부는 대학원까지 이어졌고, 이때의 자양분은 시를 풍성하게 한 것은 물론 오영미란 한 시인의 품격까지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처럼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와 무게를 아는 진정한 시인이 된 것이다.

우쭐거림이나 얄팍한 기교가 사라지자 그토록 쓰고 싶었던 시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제대로 시를 대하는 법을 알고 나니 물고가 터지 듯 시상이 떠올랐어요. 어떤 때는 신들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덕분에 3집부터 7집은 수월하게 출간할 수 있었죠.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는 겁니다”

좋은 시는 시인으로서의 역량도 크게 만들었다. 2015년 계간 ‘시와정신’ 시 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재 등단한 것이다. 13년 전에도 시인이었지만 그 무게는 현저하게 달랐다.

▲ 지난 10월 열린 충남문학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오영미 시인.

이후 오 회장은 2018년 충남문학상 작품상 수상에 이어 올해는 대상을 수상하며 지역 시단의 허리 역할을 해낼 중견 시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시인 오영미를 특별하게 눈여겨보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지역 시단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다. 오 회장은 서산지역 시문학의 수준 향상을 위해 지난해 서산시인협회를 창단했다.

시 쓰기에도 빠듯한 일상이지만 지역 시인들의 수준을 높이고, 역량 있는 신인을 발굴·육성해 서산시를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문화도시로 만들고자 한다.

▲ 제1회 ‘서산詩문학장학금’ 대상자로는 선정된 정선우 양과 오영미 시인.

창단한지 1년이 조금 지난 서산시인협회지만 그동안 3권의 ‘서산시인 아라메詩’를 발간한 것은 물론 ‘서산詩문학상’과 ‘서산詩문학장학금’을 제정해 1회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남다른 활동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오 회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시민들이 시와 자주 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이를 통해 더 많은 서산의 시인들이 탄생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오 회장은 시를 사랑하는 선배로서 한마디 조언을 남겼다.

“요즘 시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등단’만으로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만큼 더 힘들고 멀리 가야하더라도 정도를 걷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런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선배 시인들도 힘을 모아 노력하겠습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 분명 멋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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