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단 서산’ 정수정 단장
“예술인들이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지원책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

▲ 평상시 밝은 표정의 정수정 단장이었지만 코로나19가 터진 후에는 마음껏 웃기도 힘든 형편이 됐다.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수정 단장은 연극 무대에서 버티는 날까지 버텨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단절을 가져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니 ‘생활 속 거리두기’니 하고 에둘러 표현은 하지만 처음 겪어보는 차단과 격리가 혼란스러울 뿐이다.
특히 모든 일상이 비대면을 강요당하면서 그동안의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된 탓에 거의 전 분야가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문화와 예술분야는 피해가 더 심하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조차 어마어마한 사치가 된 마당에 문화와 예술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 돼 버린 것이다. 충남의 중소도시인 서산시에서 조그마한 극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정수정(35)씨의  상황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예술인들의 고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학 강단과 방과후학교 교사, 각종 공모사업 등으로 치열하게 극단을 운영하며 위기의 순간마다 예술인이란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지만 코로나19는 그동안 쌓아놓은 공든 탑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렸다. 그러나 정작 정 단장을 슬프게 만드는 건 따로 있다.
무대에 발을 들여 놓을 때부터 “춥고 배고픈 건 각오했다”던 젊은 연극인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붙잡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재능기부로 영상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물색없는 소리는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7일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정 단장은 “버티는데 까지는 버텨보겠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극을 사랑하는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예술인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 무대에서 열연하고 있는 정수정 단장. 지역의 연극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극인들의 노력과 관객들의 애정이 함께해야한다고 정 단장은 강조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문화예술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기반이 취약한 서산시 같은 지방의 경우는 그 피해가 더욱 클 것 같은데?

전부터 어려웠던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터전은 초토화됐다.
예술분야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직장인이면 당연하게 생각하는 4대 보험 같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렇다보니 대출을 받고 싶어도 변변하게 제출할 증빙서류도 없고, 각종 지원에서도 제외되기 일쑤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언젠간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4개월이 넘어가면서 많은 예술인들이 절망에 빠지고 있다.
무대의 생동감을 생명처럼 여기는 연극의 경우는 그 파장이 더욱 심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예 예술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때 같으면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만류할 수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워낙 밑바닥까지 추락한 탓에 선뜻 붙잡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더 암담한 것은 지금의 이 어두운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극단 서산의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코로나19가 지역의 문화 기반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은 터라 극단 운영이 더 힘들 것 같은데?

4년 전 극단 서산을 재창단하고, 줄곧 단장을 맡고 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단원들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지역 연극을 위해 제법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업에 선정돼 준비를 해왔다. 정통연극 무대뿐만 아니라  교육극과 아동극 등 다양한 사업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연기, 취소된 상태다.
배우들에게 이런 사정을 공지는 해놨는데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20여명의 단원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서울과 지역에서 병행해 활동하고 있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하는 연극의 특성상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어려워 다들 힘든 처지다.
그동안은 대학 강단, 방과후학교 등에서 나오는 수입이 극단 운영에 큰 보탬이 됐는데 4개월 동안 휴직 상태가 되니 극단 운영은 사실상 개점휴업과도 같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냥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극단 해성의 5기 단원들을 지난겨울에 모집했는데 조만간 화상으로 만날 계획이고, 서산시민에게 연극을 알리기 위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시민연극아카데미 등 지역에서의 연극 활성화 방안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나름 많은 고민 속에 지내고 있다.

▲ 방과후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정수정 단장. 정 단장은 서산지역의 경우 중·고등학교에 연극팀이 늘어나는 등 청소년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제정안이 20대 국회에서 무산됐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절실한 지원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술인권리보장법제정안이 무산된 것은 예술인으로서 정말 안타깝다. 그나마 고용보험법이 통과돼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예술인들의 특성상 프리랜서가 대부분이고, 고용기간도 짧아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손을 봐야할 곳이 많다. 현재도 예술창작지원(창작활동지원), 공연장대관지원, 티켓판매 등 여러 가지 지원책이 실시되고는 있지만 현장의 예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돈을 지원해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꼼꼼하게 챙겨야하겠지만 그 기준을 일반 사업과 똑같이 적용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현장의 실정을 감안해 만든 실제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
21대 국회에서도 '예술인의 지위·권리보장 법률안'이 발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는 결실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정수정 단장은 청소년 극단 해성을 통해 지역 연극의 터전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객이나 관련기관의 인식 변화도 필요할 것 같다. 현재는 모든 관심과 애정이 중앙 무대에 집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적대로 많은 지역의 젊은 연극인들이 대학로로 향하고 있다. 다른 분야도 거의 비슷한 처지라고 보면 된다. 연극의 경우 서산시가 충남 상위권 도시임에도 대관부터 시작해서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료 공연은 고사하고, 객석을 채울 수 있을지 부터 걱정해야하는 처지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문화와 예술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서산시의 경우 기획공연은 표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이런 면에서는 지역의 문화예술인들도 열악한 조건이지만 좀 더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식 변화는 분명 필요하다. 대부분의 연극인들이 순수 공연활동으로는  생계조차 유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인건비 책정 등을 할 때 무대에서 공연하는 시간을 시급으로 계산해 출연료가 비싸다고 타박하는 경우도 있다. 무대에 작품을 올리기 위해 그 몇 배가 소요되는 노력과 시간을 인정 안하는 것이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노력과 시민, 관계기관의 관심이 합쳐질 때 지역의 문화와 예술은 꽃 피울 수 있다.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동료와 후배 연극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공연준비하면서 잘 풀리지 않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연습 후 나누는 대화의 시간을 통해 또 다시 힘을 내던 것처럼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함께 버텨보자고 당부하고 싶다. 아무리 어려운 시간도 결국엔 지나간다. 코로나도 그렇게 지나갈테니.. 그리고 서산시민들께는 따뜻한 애정과 관심으로 연극인들과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을 응원해주길 당부한다. 지금은 비록 모자란 부분이 많더라도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은 친구들이 서산시에 많다. 이들이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고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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