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촌놈, 증권업계의 거장으로 성장한 원동력은 ‘가족’
올해 향우회장 취임, 열정적인 고향사랑도 기대 가득

▲ 지난 14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조한홍 전 사장. 쥐띠인 그는 올해가 자신의 해라며 왕성한 활동을 예고했다.

[충청뉴스라인 방관식 기자] 대부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그렇듯 미래에셋생명 조한홍(61) 전 사장도 평균 이상의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충청도하고도 안면도 끝자락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고깃배가 들어오면 그물을 정리하는 알바(?)를 해야 했던 꼬맹이가 돈과 연줄 없이 냉정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당연한 일이였는지도 모른다. 
날고 긴다하는 인재들이 모인 금융업계에서 공부만 잘했던 촌놈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악착같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딱 한번 휴가를 함께 간 것을 빼고는 제대로 아빠 노릇을 한 기억이 없을 정도로 일에 미쳐서 살았습니다. 그 덕에 증권업계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채권팀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죠.”
지난 1988년 9월 29살이란 늦은 나이에 럭키증권(현 NH투자증권)에 입사한 그는 탄탄한 기본기와 남다른 열정으로 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2년 반 만에 대리2년차 직급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동부증권 채권팀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직 이후 얼마 안 되어 터진 IMF는 조한홍이란 이름이 전설이 되는 밑바탕이 됐다고 한다. 영업파트의 손실을 보전하는 것을 넘어 채권팀이 회사 전체를 먹여 살리는 수익을 올리다보니 증권업계의 총아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
1999년 외국계 증권사의 임원(이사)으로 스카우트 된 후에도 멈추지 않고 내달린 그는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 사장으로 취임, 월급쟁이들의 신화로 우뚝 섰다.

▲ 증권업계를 쥐락펴락하던 시절의 조한홍 전 사장 모습. 그때나 지금이나 가족과 고향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크게 성공한 만큼 감당해야할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30여년의 직장 생활 중 사원 보다 임원으로 지낸 시간이 더 많았던 탓에 오랜 시간 상상 못 할 중압감에 시달렸고, 경쟁자들의 견제와 시기를 이겨내야만 했던 것이다.
조한홍 전 사장은 이처럼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으로 ‘가족’을 뽑았다.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과 갑자기 기울어진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눈앞의 행정고시를 포기하고 직장생활에 나선 큰형,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준 동생들까지, 그에게 있어 가족은 든든한 버팀목 이상의 ‘신념’이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야한다고 깨달은 것, 놀기 바빴던 철없던 고등학생이 학교를 휴학한 후 미친 듯 공부해 복학 후 수석을 차지한 것, 단칸방 하나 없던 신혼부부가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모두 다가 곁에 가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끈끈한 우애를 물려주신 덕분이죠.”
형님이 다니던 회사 사택에 열 식구가 더부살이를 해야만 했을 정도로 땅바닥까지 떨어진 최악의 상황도 겪었지만 이들은 거뜬히 극복해 냈고, 소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집안을 이뤄냈다. 나란히 고려대를 나와 베트남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한정(큰형)씨와 증권가의 신화로 불리는 조 전 사장, 그리고 연세대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해 청와대 제1부속실 비서관으로 남북 정상 회담 등의 역사적인 순간마다 대통령을 제일 가까이서 보필했던 조한기(넷째) 예비후보(조한기 전 비서관은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한 상태다.) 등 4남 1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이 같은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조 전 사장의 사회생활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치열한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과 직면할 때마다 팀원들은 함께해야할 가족이었다. 그런 연유로 감당해야할 무게 이상을 짊어지고도 기쁜 마음으로 늘 당당하게 앞장설 수 있었고, 동료들은 그를 진정한 리더로 따랐다.
“팀장 시절 만난 동부증권 채권팀 20여명과는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송년회를 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모두 각 회사의 임원이 돼서 활동하는 걸 보면 흐뭇합니다. 제2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난 2017년 현역에서 잠시 은퇴해 숨고르기에 들어간 조 전 사장은 올해 재경서산시향우회장으로 취임하며 인생2막을 열었다.
평생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터라 향우회장이 되어서도 ‘대충’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조 전 사장은 고향인 서산시와 향우회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계획을 실천할 생각이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현역시절에도 고려대 후배들과 함께 모교인 서령고를 찾아 대화자리를 만드는 등 후배를 비롯한 고향사람들을 챙기는데 앞장서온 조 전 사장은 △분과별 부회장단 구성 △구체적인 업무분장 △서·태안 특산품 소비 촉진을 위한 사이트 개설 △SNS 활성화 △인근 향우회와의 교류 등을 통해 출향인과 고향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되고자 한다고 했다.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진행형이다. 녹슬지 않은 남다른 경쟁력과 리더십으로 언제든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고, 향우회장으로서 보여줄 행보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경자년 새해 주목해야할 충청인 중 한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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